솔직히 저는 간암 치료가 이렇게 빠르게 변하고 있을 줄 몰랐습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소라페닙'이라는 표적 치료제가 거의 유일한 선택지였고, 그마저도 생존 기간을 몇 개월 연장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유창훈 교수님의 강연을 듣고 나서, 제가 알던 간암 치료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환자들에게 흔한 B형 간염성 간암은 간경화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발생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면역 항암제 병합 요법이 표준 치료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간암 치료의 최신 흐름을 데이터와 실제 치료 전략을 중심으로 풀어보겠습니다.

B형 간염과 비경변성 간암의 위험성
일반적으로 간암은 '만성 간염 → 간경화 → 암'이라는 단계적 진행 과정을 밟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거나 C형 간염에 걸린 경우, 오랜 시간에 걸쳐 간이 딱딱하게 굳는 간경화(Liver Cirrhosis)가 먼저 나타나고, 그 토양 위에서 암세포가 자라는 식입니다. 여기서 간경화란 간 조직이 섬유화 되어 정상적인 기능을 잃어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B형 간염(Hepatitis B)의 경우는 이 공식이 깨집니다.
B형 간염 바이러스는 DNA 바이러스로, 정상 간세포의 유전자에 직접 침투해 암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즉, 간경화라는 '경고 단계' 없이 갑자기 간암이 발생하는 겁니다. 제가 건강검진 커뮤니티에서 상담 사례를 정리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케이스가 바로 이런 경우였습니다. 30대 후반의 한 직장인이 술도 안 마시고 간 수치도 정상이었는데, 정기 검진에서 갑자기 3cm 크기의 간암이 발견된 적이 있습니다. B형 간염 보유자였지만 증상이 전혀 없었기에 방심했던 겁니다.
국내 간암 환자의 약 70% 이상이 B형 간염과 관련 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출처: 대한간암학회). 이는 단순히 수치가 아니라, 젊은 나이에도 '비경변성 간암'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는 경고입니다. 따라서 B형 간염 보유자라면 6개월마다 초음파와 혈액 검사(AFP, PIVKA-II 같은 종양 표지자)를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여기서 AFP란 알파태아단백(Alpha-Fetoprotein)으로, 간암 세포가 만들어내는 단백질 수치를 의미합니다. 간경화가 없더라도 바이러스가 DNA에 박혀 있는 한, 언제든 암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면역 항암제 병합 요법의 시대
최근 5년간 간암 치료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는 '표적 치료제 단독'에서 '면역 항암제 기반 병합 요법'으로의 전환입니다. 과거에는 넥사바(소라페닙)나 렌비마(렌바티닙) 같은 표적 치료제를 단독으로 썼는데, 이들은 주로 혈관 신생을 억제해 암세포에 영양 공급을 차단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효과는 있었지만 생존 기간 연장이 평균 2~3개월 수준에 그쳤고,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2020년 이후 두 가지 면역 항암제 병합 요법이 1차 치료로 승인되면서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하나는 아테졸리주맙+베바시주맙(통칭 '아테베바'), 다른 하나는 더발루맙+트레멜리무맙(통칭 '더바트레미')입니다. 제가 최근 치료 후기를 분석하면서 눈여겨본 점은, 이 두 요법이 단순히 '암을 조금 더 늦춘다'는 수준이 아니라 '장기 생존'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는 겁니다.
아테베바는 PD-L1(면역관문억제제)과 VEGF 억제제(혈관 신생 차단제)를 조합한 것으로, 단기 치료 반응률이 높습니다. 여기서 PD-L1이란 암세포가 면역세포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내거는 '방패' 같은 단백질을 차단하는 약물입니다. 반면 더바트레미는 PD-L1과 CTLA-4라는 두 가지 면역관문을 동시에 차단하는 '듀얼 면역 항암제'입니다. CTLA-4는 T세포의 활성을 억제하는 또 다른 면역 브레이크로, 이를 풀어주면 면역 시스템이 더욱 강력하게 작동합니다. 더바트레미는 초기 반응은 느릴 수 있지만, 5~6년 장기 생존 데이터가 나오고 있어 '완치 가능성'을 높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글로벌 임상 연구에 따르면, 아테베바 투여 환자의 중앙 생존 기간은 약 19개월로, 과거 소라페닙의 10~13개월 대비 거의 2배 가까이 늘었습니다(출처: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더바트레미 역시 3년 생존율이 30% 이상 유지되는 결과를 보여, 과거라면 상상하기 어려웠던 수치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환자의 나이, 간 기능, 부작용 내성에 따라 두 요법 중 하나를 선택하는 '맞춤형 전략'이 앞으로 더 정교해질 거라고 봅니다.
간 기능 보존이 치료의 입장권이다
아무리 좋은 항암제가 나와도, 간 기능이 받쳐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간암 치료에서 간 기능은 '치료의 입장권'이자 '생존의 버팀목'입니다. 간암은 병기를 A부터 D까지 4단계로 나누는데, 이 분류는 다른 암과 달리 '간 기능'을 핵심 변수로 포함합니다.
A기는 종양이 작고 간 기능이 좋아서 수술이나 간이식, 고주파 열치료(RFA) 같은 근치적 치료가 가능한 단계입니다. 여기서 RFA란 Radio-Frequency Ablation의 약자로, 바늘을 종양에 꽂아 고주파 열로 암세포를 태워 없애는 시술입니다. B 기는 종양이 여러 개 있어 수술은 어렵지만, 간동맥 화학색전술(TACE)로 관리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TACE는 간동맥을 통해 항암제를 주입하고 혈관을 막아 암세포를 굶기는 치료법입니다. C기부 터는 간 밖으로 전이가 있거나 문맥(간으로 가는 혈관)이 막혀서 전신 항암 치료가 필요하며, D 기는 간 기능이 너무 나빠서 적극적 치료 자체가 불가능한 단계입니다.
제가 환우 커뮤니티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사례는, 암 자체는 C기 초반이었지만 간경화가 심해서(Child-Pugh 등급 C) 항암제를 단 한 차례도 쓰지 못하고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분이었습니다. Child-Pugh 등급이란 간 기능을 평가하는 점수 체계로, A(가장 좋음), B(중간), C(매우 나쁨)로 나뉩니다. 등급 C는 복수가 차고 황달이 심하며 의식이 혼미해지는 단계로, 이 상태에서는 아무리 최신 면역 항암제라도 투여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간 기능이 잘 보존된 환자는 1차 치료 실패 후에도 2차, 3차 치료를 이어갈 수 있고, 중간에 색전술이나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며 '시간 벌기'가 가능합니다. 실제로 간 기능이 좋은 A기 환자는 5년 생존율이 70%를 넘지만, 간경화가 심한 D기 환자는 1년 생존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따라서 간암 환자에게는 '암을 잡는 것'만큼이나 '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금주는 기본이고, 단백질 섭취 조절, 감염 예방, 정기적인 간 기능 검사가 생존 기간을 좌우합니다.
정리하면, 간암 치료는 이제 '생존 연장'을 넘어 '장기 생존'과 '삶의 질'을 동시에 추구하는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면역 항암제 병합 요법의 등장으로 과거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5년 생존이 현실이 되고 있고, 환자 개개인의 상태에 맞춘 정밀 의료가 빠르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혁신적인 치료법도 결국 '간 기능'이라는 토대 위에서만 작동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 경험상 간암은 조기 발견과 간 기능 보존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잡았을 때 비로소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질환입니다. B형 간염 보유자라면 증상이 없더라도 6개월마다 정기 검진을 받고, 이미 간암 진단을 받았다면 최신 치료 옵션과 간 기능 관리를 병행하는 전략을 의료진과 함께 세워나가길 바랍니다.